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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토.칸트.물자체.정언명법.푸코.춈스키.미시권력

by 마철방 2023. 12. 28.

[밴마철]  우리가 공부한 것을 잠시 반추해 보면 순수이성의 핵심은 과학을 100% 만들어 주는 선험적 종합판단이 있는데 그것을 그렇게 해 주는 오성(지성 intellect)의 형식이 초월적 구조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실천이성에서는 자유를 100%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 정언명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네 의지의 준칙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 보편타당하게 되도록 행위하라”는 정언 명법이 실천이성에서는 선험적 종합판단의 같은 것으로 작덩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 보편타당이라는 말을 쉽게 하면 ”인류 공영에 이바지”라는 말과 같은 뜻이고 자유의 공공적 사용이라는 뜻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뒤돌아 보면 박정희 시대에 조국의 근대화라는 슬로건으로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교련 같은 훈련을 통해 그것을 몸에 익혔습니다. 이것이 자발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어떤 감시와 처벌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우리의 몸에 각인 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좋은 것을 요즘 젊은이에게 말하면 바로 꼰대 소리 듣습니다  어떠한 제도라도 그 안에는 어떤 은밀한 갑질이 숨어 있습니다, 푸코는 이것을 미시권력 micro power라고 하는데 누군가가 갑질이라는 용어로 잘 번역한 것 같습니다. 사회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보통 잭신 선생님이 지적하셨듯이 우리에게는 착한 본성 같은 것이 있어 제도를 더 좋은 쪽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착한 본성이 바로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춈스키 스티븐 핑거가 말한 착한 본성은 바로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을 염두한 것입니다. 춈스키와 푸코의 세기적 대결은 약 2시간 분량인데 이것을 한 10분 짜리로 만들어 한글로 번역한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어 올려 봅니다.

 

https://youtube.com/watch?v=7WZxH8Itqgo&si=msKX3fKkgL8W7nQj

 

춈스키가 말하는 아나르코 생디칼리즘은 아나키적 신디칼리즘을 말합니다, 즉 무정부적인 조합주의라는 뜻입니다. 비유가 맞는 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이 둘의 논쟁을 이렇게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이 좀 마음에 안들어 시골로 내려가서 산다고 합시다. 여기에 두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맘에 맞는 사람들과 같이 공동체를 꾸려 사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춈스키가 말한 아나르코 생디칼리즘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보면 아무리 좋은 공동체라도 거기에는 어떤 약속체계 자유의 공공적 사용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하나의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도 싫다고 해서 자연인으로 혼자사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푸코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거기에는 약속이 있고 그 약속은 감시와 처벌을 수행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회가 춈스키적으로 나가고 있는 지? 푸코적으로 나가고 있는지?를 우리의 회식문화로 한번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회식은 좋은 음식에 솔직한 대화 이런 것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아나키적 신디칼리즘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알게 모르게 작동하는 감시와 처벌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세대에는 윗 사람이 술을 권하면 받아서 먹어야 하고 집에 가고 싶지만 윗 사람이 자리에 일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암묵적 약속 혹은 미시권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 이들은 자기가 술 먹기 싫으면 안먹는다고 분명하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집에 가고 싶으면 먼저 일어나서 가기도 랍니다, 심지어 회식문화 자체를 갑질이라고 여기며 참석도 안하려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약간 푸코의 편을 드는 사례입니다, 어째든 춈스키는 착한 본성 칸트적으로 말하면 이성이 있어 우리는 제도를 개선시키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고 푸코는 그 어떤 제도도 거기에는 갑질이 숨어 있다는 지적입니다. 낙관론과 회의론 predictable과 unpredictable 입니다. 여기서 중도를 생각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한다면 마음을 비우되 아무것도 필요없다는 것까지 나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Jack Shin] 매우 어려운 내용이라 소화하기 힘드네요. 

현상계에서 발생되는 인과관계를 오성이 작동해서 파악하는 체계는 순수이성이 물자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물자체가 자연법칙의 원인성이되고,

자유가 실현되는 실천이성의 세계도 인간이 그것을 구현하는데, 인간 스스로가 물자체이니 결국 물자체가 자유의 원인성이 된다…

 

물자체가 이중성을 갖게 되지만,이는 자의식을 갖는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닐까요 

 

[밴마철]  착한 본성에 의한 더 나은 제도로 진보에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거짓말을 절대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 전제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약속을 지킨다는 뜻으로 필연적으로 삶을 금욕주의로 몰고 가는 것이 있습니다. 반면에 때려 죽어도 솔직하게 말하고 살고 싶다는 것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약간 다른 뉘앙스를 가집니다, 자기자신에게 솔직함을 푸코는 파레시아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금욕이 아닌 자기 기쁨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지작하신 대로 물자체가 이중성을 갖는다는 것은 칸트철학의 특징이자 단점이기도 합니다. 이것의 극복과제로 헤겔 쇼펜하우어가 등장하게 됩니다. 

 

동물은 과학도 모르고 자유도 모릅니다, 그러니 물자체는 인간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되도록 약속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약속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으로 금욕적 경향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솔직함을 내세워 약속을 깨는 것도 문제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