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마철] 예 동감합니다. 산다는 것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내 것이 아닌 외부의 기운을 가져와 그것을 자기 기운으로 만들어야 살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비극 모순 양립불가능 이런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외부 기운을 뺏어와야 내 생명이 유지된다는 것에 비극 모순 양립블가능성이 있지만 그런 비극 모순이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으로 거기에 대한 조금은 미안해 해야 것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저도 해 봅니다.
폭력 써클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이전에 종림스님이라는 분에 대한 동영상 올렸습니다, 거기에서 해인사 행자들의 군기는 해병대 군기보다 더 쎄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철스님 행자는 그 해인사 행자보다 더 빡세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을 한번 더 생각하려고 합니다.
https://youtube.com/watch?v=dkQbVTtHgOk&si=tn6Iz_AC5-JxS2Uk
https://youtube.com/watch?v=nckavmJ-LOo&si=ww_xiH3yjx4F69ST
위의 동영상은 일본의 묵조선 계통의 조동종 본산 영평사의 스님 생활입니다. 아래는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해병대 훈련입니다. 보시면 뭔가 서로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마조히즘과 새디즘이 결합한 것으로 매우 닮아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빅토리안이라는 사람이 전쟁과 선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내용은 일본 불교의 선수행이 일본군대로 그대로 이전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눈알도 움직이지 않는 부동자세 이런 것은 바로 좌선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이런 엄격한 규율을 기반으로 선배와 후배 간의 마조히즘과 새디즘을 통해 얻는 희열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해병대 군기는 일제시대 일본에서 군대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옮겨 온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불교계에 있는 이런 폭력 행태를 비판하면서 한국을 떠난 사람이 현각스님입니다.
많은 종교학자들은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를 유사종교라고 말합니다, 거기에는 뭉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폭력이 용인되어야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스탈린의 강제 수용소 이런 것이 종교적 폭력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독일 거주 유태인들은 모두 자기들의 이웃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기들의 결속을 도모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스탈린이 강제수용소로 보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릭 프롬이 쓴 자유로부터 도피라는 것은 이런 내용에 기반한 것입니다. 쇼생크 탈출에서 브룩스가 감옥을 나가기 두려워했던 것처럼 그런 심리가 작동해서 히틀러나 스탈린의 독재가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jms나 신천지 같은 것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 심리와 비슷한 것입니다.
저기 위에 해병대 동영상에서 해병대 교육이 끝나면 자기들을 그렇게 괴롭혔던 그 교관을 행가라치며 그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며 헤어지는 것에 대해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마조히즘 새디즘 관계입니다. 사실 진정한 자유가 되려면 이 관계를 끊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잭과 테일러는 사실은 같은 사람입니다. 잭이 테일러라는 가공 인물을 만들고 거기에 마조히즘-새디즘 관계를 만들어 희열을 느꼈으나 그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테일러를 죽이기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 아닌가? 그런 물음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마조히즘과 새디즘의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이런 식의 파이트클럽 해석이 있어서 공유해 봅니다.
https://brunch.co.kr/@hkyung769/163
<파이트 클럽>-'세계의 끝에서 끈덕지게 주먹을 뻗다'
[영화 후기,리뷰/왓챠, 90년대 세기말 영화 추천/결말 해석] | 파이트 클럽 (Fight Club) 개봉일 : 1999.11.13 (한국 기준) 감독 : 데이빗 핀처 출연 : 브래드 피트, 에드워드 노튼, 헬레나 본햄 카터, 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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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종교를 마조히즘과 새디즘의 관계로 유지시키는 것이 되어야 하는가? 그런 관계를 끊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인가?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니이체가 종교에 던진 문제 의식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니이체가 종교를 부정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종교를 찾으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저는 영성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이체 자신은 마조히즘—새디즘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고 “금욕”이라는 말만 했지만 거기에는 프로이드가 설명한 마저히즘—새디즘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일 좀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Jack Shin] 불교의 실존적인 사상들을 하이데거와 비교할 때 마다 생경했던 이유가 이런데 있다고 봅니다.
실존적이어야 할 불교와 중들의 삶이 밖에서 볼 때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자발적인 실존의 헌납...그게 종교라면 할 말이 없지만…
실존이라는 것은 사적 자유가 전제되어야 자각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에서는 공적 자유가 칸트 시대에 겨우 개념으로 등장한 것 같은데, 동양에서는 기원전 6세기 불교가 처음 등장할 때, 사적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가르침이 시작되었으니 공적 자유의 개념도 없는 시대의 사람들이 겪었을 정신적 혼란을 갸늠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런 해병대같은 집단적 자유에 기반을 둔 규율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공적자유라는 개념 조차없는데, 가르침은 사적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깨우침이라...무지 혼란스러움 조차 깨닿지 못하고 깨닿겠다고 하는 또 다른 혼란스러움..ㅎㅎㅎ
제 자신의 모습이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