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마철] [오전 6:26] 막스베버 이야기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 유교는 합리적입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기적이나 하느님의 상과 벌을 말하는 비합리적 사상입니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합리성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그러면 유교사상에 기초한 중국이 자본주의를 먼저 성립시키고 발전 시킬 것 같은데 어째서 중국은 자본주의로 못 나가고 서양이 자본주의로 나아가게 되었는가? 라는 것이 그의 근본적 문제 의식입니다. 앞서 살펴본대로 유교는 합리성을 주장하였지만 그것을 미신적 것과 완전히 결별하지 못하고 주술적 정원에 놀게 됨으로써 자본주의를 성립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양 특히 캘빈이즘은 신을 이신론Deism 혹은 sleeping god 로 파악하면서 미신을 일소하고 합리성 추구의 극치를 이룸으로서 자본주의를 성립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합리성이라는 것이 바로 데까르트의 연장적 실체로 모든 것을 수학적 량으로 표시하는 수량화 계량화를 이룩함으로써 합리성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중국사람들은 마음이 약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지독함이 없어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반대로 서양은 지독스런 철저함를 굳게 밀고 나가서 자본주의를 성립시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유교 혹은 성리학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조상제사인데 그것을 합리적으로 보았다는 것이 무슨 뜻이고 또 주술적 정원에서 놀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그런 의문이 듭니다. 주자학은 핵심은 리와 기입니다. 리는 원리 이치라는 뜻이고 기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나 질료을 뜻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 인간정신은 이치가 아니고 움직임이 있는 기입니다. 리는 필연적 법칙이고 기는 그 필연적 법칙에 의하여 생겨나고 사라지고 하는 현상적인 모든 것들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정신 또한 죽으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라지지 않으면 큰 문제입니다. 조상의 혼령도 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라져야 정상입니다. 그러면 제사의 대상이 사라져 버렸는데 왜 제사를 지내는가?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테오리치를 비룻해 중국에 온 선교사들이 조상제사를 보고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이론적으로는 조상의 혼령이 기로서 사라져 버렸다고 하면서 왜 제사를 지내는가? 그것은 일종의 추념행사라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을 다시 한번 추억하면서 그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끼리 모여 같이 밥먹는 것에 중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조상의 혼령이 있어 제사음식을 먹으로 오고 또 그런 조상혼령이 후손에게 복을 주고, 그렇다고 믿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마테오리치 일파는 예수회 소속이고 지식인이고 또 그들의 포교대상도 중국의 지식인이었습니다. 그 중국 지식인들의 제사에 대한 생각이 위에서 말한 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선교에 프란체스코파도 있었습니다.이들은 종교적 신념에 기반해 주로 하층민을 대상으로 전도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하층민들을 보니 이들은 진짜로 조상혼령이 있어 제사음식을 먹으로 오고 또 후손에게 복을 준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회 논리대로 하면 조상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단지 추념행사입니다. 프란체스코파로 보면 조상제사는 우상숭배입니다. 프란체스코파는 예수회를 누르고 중국에서 전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하여 교황청에 예수회를 고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우여 곡절이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식인 상류층은 제사를 일종의 추념행사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제사가 일종의 추념행사에 불과할 수 있는데 조선사회를 보면 조상제사에 목을 매는 듯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 여기에 의문을 품은 학자가 스위스 출신 여성학자 더이힐러 라는 분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상속권 문제 때문입니다. 율곡에서 보여주듯이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친정에서 상속해 온 재산으로 율곡을 키운 것입니다. 율곡 시기만 하더라도 여자 남자 큰아들 작은아들 등이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습니다. 대신에 제사도 돌아가면서 지냈습니다. 이렇게 재산이 쪼개지는 것이 반복되니 명문대가, 이런 것이 성립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하여 재산을 큰아들에게만 주는 것으로 바뀌고 따라서 제사도 큰아들만 지내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산을 다 가져간 큰 아들이 제사를 지내면서 위계질서를 확인하고 먹을 것을 같이 하는 행사를 했던 것이 조상제사인 것입니다. 오늘날은 법적으로 재산이 균분 상속이니 자연히 제사의 의미도 약화될 수 밖에 없지요.
전세계적으로 장자상속이 강한 것이 영국과 조선이었습니다. 영국도 큰아들 장자에게 재산을 몰빵 상속했습니다. 둘째 아들 이하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풍족하게 지냈지만 부모가 죽으면 자기 힘으로만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들은 토지가 없음으로 해서 도시로 몰리면서 뭔가를 했어야 했습니다. 이들을 gentry라고 합니다. gentleman 이라는 것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조선도 둘째아들 이하가 살아남으려면 공부를 열심이 하여 과거에 합격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유교적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주자학 내에서 있었다기 보다는 사회적 요구 필요성과 깊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Jack Shin] [오전 8:45] 보수 장로교에서 숭배해 마지않는 캘빈이 이신론을 정립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여기도 밥그릇 법칙이 적용되는군요 ㅎㅎ
[밴마철] 저기 위에 여성학자 더이힐러라고 했는데 도이힐러라고 해야 합니다. 이 여성학자가 미국 하바드에 와서 공부도 했는데 그 때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미국에서 죽자 유골을 들고 한국에 와 시부모를 만났는데 그들이 조상제사에 목을 매는 것을 보고 조선시대 조상제사를 연구하여 한국 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학문적 성과를 이룬 것입니다.
https://youtube.com/watch?v=RA9BfCtYcvo&si=tQhcEEt8j0OOJazC
크롬웰의 청교도 독재가 바로 캘빈이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캘빈 자체도 제네바에서 이런 독재 통치를 하여 제네바의 살인마라는 오명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런 청교도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한 단면이 되었다는 사실이 씁쓸합니다. 영국의 음식이 맛이 없는 것이 바로 이 크롬웰 시대에 음식 사치를 금지시켜 그런 전통이 내려와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크롬웰이 영국 자본주의 초석을 놓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