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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화.존재.해석.현상계.물자체.해체.무규정.자유.키에르케고르.순간에서영원의포착

by 마철방 2024. 1. 27.

[밴마철] [오전 6:28] 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오탈자에 신경을 더 써야 하고 문장도 좀 다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읽어 보니 일방적으로 하는 것보다 서로 대화하는 형식이 훨씬 좋아 보입니다. 다른 분들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석해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밴마철] [오전 6:37] 지난 번 동지 팥죽 모임 때 연말에 만두 만들자 의견이 있었는데 그것을 12월 31일 실행해 보려고 합니다. 같이 만두 만들어 만두 떡국 해 먹고 내년 1월 초에 만들어 놓은 만두로 시모아 산 등산을 하고 거기서 떡 만두국도 먹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금 신 선생님이 추진하시고 있는 블로그에 대한 좋은 의견도 개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철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 요리 모임 등 몇가지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 서로 간의 대화가 있어야 살아 있는 블로그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야기도 할 겸해서 만두 모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밴마철] [오전 6:54] 제가 공부 모임을 하면서 얻는 기쁨이 참 많습니다. 원래 저는 한국 성리학을 전공했는데 우연히 성호 이익을 하다보니 마테오 리치를 해야 했고 마테오 리치를 하다보니 토마스 아퀴나스를 해야 했고 아퀴나스를 하다 보니 아리스토텔레스를 좀 하게 되었습니다. 서양 근대철학이나 현대 포스트모던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부 모임을 하다 보니 지금 현실에 관련이 있는 것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쪽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하다보니 이전의 공부가 우물안의 개구리이고 별로 쓸데없는 것이었구나, 그런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공부가 논문을 쓰기 위해 쥐어짜는 것이 아니고 소풍하듯이 자유스런 것이기에 진짜 재미도 느꼈습니다. 제가 여기서 책을 구입할 형편도 아니기에 주로 인터넷에 있는 pdf로 된 학위논문을 위주로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영어 논문도 좀 보았는데 요즘은 잘 안보게 되네요. 눈도 침침하고 복잡한 것 생각하기도 싫고 해서 그런데 이제 블로그가 본격화하면 심기일전해서 다시 열심히 해 보려고 합니다.

 

[밴마철] [오전 7:28] 요즘 이 공부 모임을 통해서 얻은 기쁨은 제 나름의 존재에 대한 이해의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좀 해보려고 합니다. 존재는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여기서 살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플라톤을 보면 이 세상을 이데아와 현상계로 나누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진짜 있음은 이데아에 있고 지금 있는 것은 가짜로 있음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것이 기독교로 가면 하늘나라가 진짜 있음이고 지금 여기 현실은 가짜 있음입니다. 이것이 칸트로 가면 물자체가 진짜있음이고 현상은 가짜있음이 됩니다. 그리하여 물리적 현상에서는 필연적 법칙이 진짜있음이고 그것에 의해 생겨나는 것은 가짜 있음 가상의 세계라는 뜻을 가집니다. 실천이성은 비록 물자체의 세계라고 하지만 거기에도 만인을 위한 선 만인을 위한 악이라는 도덕법칙 위에 섰을 때만 진짜 나이고 평상시에는 가짜 나라는 뜻을 가집니다. 헤겔에 오면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변증법의 논리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정신으로 이끄는 역사이성에 섰을 때만 진짜 나 이고 그렇지 못할 때는 가짜 나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다 죽어 없어지는 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끝이 있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죽어 없어져 무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진짜 있음”은 바로 지금 여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철학은 주로 지금 여기를 가짜라고 하고 진짜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그것을 거꾸로 보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울고 웃고 떠들며 기뻐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만 진짜이고 죽으면 그런 것 다 없어지는 무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한성의 자각입니다. 죽음 무로 인하여 지금 여기있는 내가 절대적으로 긍정될 수 밖애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죽음 무로 인하여 지금 여기의 있음(존재)이 절대적으로 긍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밴마철] [오전 7:42] 지금 여기 살아 있는 내가 진짜 있음(존재)가 되려면 나의 있음을 방해하는 것들이 철거되어야 진짜 있음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방해요소가 없는 것이 자유 이지요. 자유 속에 있어야 진짜 있음이 제대로 발현된다는 것입니다. 자유는 나를 옭아매는 규정이 아니라 그것을 해체하는 무규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무는 자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이런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겠습니까. 온갖 형태로 구속해 오는 것이 있어 그런 것 다 거부하면 그것이 바로 죽음이지요. 그럼에도 불구라고 어떤 것이 일차적이고 어떤 것이 이차적인 것인지는 생각해 볼 수 있고 거기에 따른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 모임의 구성원 대부분이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향하여 가고 있는데 나머지 여생을 조금이라도 더 자유에 가치를 두고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우리 공부모임의 방향성은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밴마철] [오전 8:25]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시간이란 것은 태어나면 죽게 된다는 뜻입입니다, 생겨난 생성은 반드시 소멸이 된다는 것입니다. 있었던 기억은 반드시 망각으로 빠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시간 속에서 창조와 파괴가 일어 납니다. 나의 진짜 있음은 이런 시간 속에 있으며 계속 변화하는 과정을 겪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시간 속에서 계속 변하고 있으니 어떤 것이 진짜 나의 있음 인지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진짜 나의 있음을 찾는다면 어떤 시간의 연속된 흐름의 잠깐 멈추는 순간에서 나의 충만감을 확인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런 것을 키에르케고르는 순간에서 영원의 포착이라고 하고 하이데거는 존재의 탈은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순간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일시적이며 사라져 망각의 늪으로 빠져 버린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일정한 형태로 계속 붙잡고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고 망각함으로서 또 다른 새로움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진짜 있음은 이와 같이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무규정적 흐름에 놓여 있다는 것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울고 웃었던 순간들이 망각으로 빠지면서 또 다른 울고 웃는 것을 찾는 그런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울고 웃던 순간들만이 내 인생이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밴마철] [오전 9:39] 요즘 제가 생각해 본 바로는 니이체 이야기와 하이데거 이야기가 근본적인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나이체는 좀 힘이 들어가 있고 하이데거는 힘을 좀 뺄려고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 위에 케에르케거르가 있습니다. 키에르케거르는 바로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christianity와 christendom 문제와 함께 내일 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Jack Shin] [오전 11:56] 아직 초기라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만, 

철학방...지금 강의방

마늘방...농사 이야기

사랑방...이벤트,여흥,율력,산행 등

한의방..한방,음양오행, 등

요리집...요리,

책방...책 이야기,서평,독후감 등

다락방...기타 생활의 잡다한 이야기

 

등을 구상하고 있는데 방하나 하나 마다 전담 인력이 필요합니다 

 

[Jack Shin] [오전 11:59] 블로그에 실명이 부담스러우신 분은 저에게 닉네임을 알려주시면 그대로 변경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