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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수.아리스토텔레스.목적론.진화론.니체.전체.개체.카너만.행복론

by 마철방 2024. 1. 27.

[밴마철] [오전 7:02] 아리스텔레스는 인간은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산다고 하였습니다. 어린 애들은 왜 공부를 하느냐고 묻게 되면 더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무엇을 위하여 더 좋은 학교를 가느냐고 묻게 되면 나중에 더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위하여 좋은 직장을 얻으려고 하느냐고 묻게 되면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하여 ……이런 식으로 그 목적을 계속해서 물어 나가게되면 그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고 대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복을 eudaimonia라고도 합니다. 어찌되었든 미래의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현재의 삶은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한 발 더 나아가게 되면 그 행복은 하늘나라 천당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이지요. 모든 지상의 괴로움을 이겨 내는 것은 천상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이런 말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이것의 반대가 니이체가 말하는 지금 여기의 대지의 철학입니다. 지금 여기서 자유와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나중에도 그런 것 없다는 것이지요. 자본주의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그 시스템이 불완전 했을 때는 개인도 우연 속에 돈을 많이 벌게 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후기 자본주의에 이르러 시스템이 안정화된 사회에서는 그런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나중 저기라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니이체의 지금 여기의 대지의 철학이 각광받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밴마철] [오전 7:26] 목적론은 자연이나 사회를 거대한 유기체로 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더 높은 목적과 더 낮은 목적들이 서로 얽혀 있으면 더 낮은 목적들은 더 높은 목적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회로 말하면 개인은 공동체의 목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 개인이 짓밟혀도 그 전체 목적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마치 풀은 토끼가 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 처럼…자연전체, 사회전체가 어떤 목적 목표를 위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고 철학가의 임무는 그런 목표 목적에 이르는 필연적 법칙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과 반대되는 것이 다윈의 진화론입니다. 진화의 방향은 그 개체 혹은 세포가 외부와 적응하는 과정에서 최적의 방향을 찾는 것이고 그런 방향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개체가 살아 움직이며 진화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전체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양성 다원주의가 확보되는 것입니다. 목표나 목적을 내세우면 그 최종 한 점을 위하여 모여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성 다원주의는 시간에 띠라 지양되어야 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니이체를 생기론적 다윈주의라고 합니다. 그 뜻은 모든 개체는 자기 자신의 지금 여기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지  더 큰 목표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니이체가 목적론을 그렇게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밴마철] [오전 7:32] 목적론이나 진화론이나 자연 전체를 유기체로 보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목적론은 그 유기체의 나아갈 방향이 정해졌다는 것으로 보고 진화론은 그 방향이 정해지지 않는 자유의 상태로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목적론은 개체는 전체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진화론은 개체는 개체 자신을 위해 산다는 뜻을 가지게 됩니다.

[밴마철] [오전 7:37] 저기 위에서 올린 신학자의 동영상 보면 자기 돌봄(self care)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푸코가 예술적 삶을 말하는데서 나온 말입니다. 자기의 미학적 가치를 가지고 자기를 실현한다는 뜻입니다. 크게 보면 니이체의 지금 여기의 대지의 철학을 계승하여 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밴마철] [오전 8:16] 예전에 심리학을 기반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너만의 행복론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추운 아이오와 주 사람들이 따뜻한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게 되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실제로 이사를 가게 되면 캘리포니아에서 진짜로 행복감을 느끼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이오와주에서 느끼지 못한 행복감은 캘리포니아에 와서도 못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설문조사로 통계에 기반하여 실증하였습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을 찾지 못하면 나중 저기에서 행복감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헤겔의 역사이성이나 맑스의 유물론 같은 것이 캘리포니아로의 이사와 같은 점이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