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토.칸트.순수이성비판.판단력비판.종합판단.분석판단
[밴마철] 비판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칸트가 말한 비판에 대해서 좀 알아 보겠습니다. 순수이성비판 실천력이성비판 판단력이성비판 이렇게 모두 다 비판이라는 말을 책 제목에 붙여 놓았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비판의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서 비판은 순수이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순수이성으로 모든 것 다 아는 것은 아니고 모르는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것의 의도는 신학이나 그와 결부된 형이상학은 앎에서 제외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과학적인 앎으로 앎을 제한시키려고 한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우선 그는 모든 앎은 색성향미촉이라는 감각대상이 어떤 에너지를 발생시켜 안이비설신이라는 감각기관을 촉발시킵니다, 그래서 얻어지acceptance 전기화학적 신호같을 것을 감각재료라고 합니다, 칸트는 이러한 감각재료는 무질서하다는 뜻으로 잡다하다고 랍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흄과 같습니다, 질서가 없으니 100%는 아니지요. 이러한 감각재료에 어떤 질서를 부여하는 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틀이 질서를 부여하기 때문에 100% 확실한 과학적 앎이 성립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신이나 그와 관련된 형이상학은 감각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감각의 재료가 없는 것들은 진정한 앎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앎에 한계를 지운다는 뜻이 비판의 뜻입니다, 앎은 반드시 감각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은 흄을 받아들인 것이지만 100%로 만들어 주는 틀을 제시함으로서 흄을 비판하기도 한 것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틀이 없으면 블가지론의 회의주의자에 빠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틀이라는 것은 주로 데카르트가 말한 본구관념innate idea에서 온 것입니다, 합리론자는 감각재료를 무시하고 틀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들은 독단론적 형이상학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칸트는 흄과 데까르트를 비판하면서도 그들을 종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칸트에게서 이것도 비판의 뜻입니다. 칸트하면 자주 나오는 명언이 있습니다. “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내용이라는 것은 바로 감각재료라는 뜻입니다. 개념이라는 것은 틀에서 나오는 것이라는뜻입니다. 직관이라는 감각대상과 감각기관이 만나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이것은 경험론자의 회의론을 비판하는 동시에 합리론자들의 독단론을 비판한 것입니다. 그 비판을 통하여 만들어진 것이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뜻입니다.
[밴마철] 여기서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감정이라는 것과 이성이라는 것. 보통 우리가 안이비설신이라는 감각기관이 색성향미촉이라는 감각대상을 만나서 만들어 지는 것을 흄은 인상impression이라고 했고 그것이 앎의 가장 기본단위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머리에 들어와 여러형태로 연결되는 것을 관념idea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impression이 생기는 순간에 감각기관이 가지는 특성으로 인하여 반드시 감정emotion이 생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각기관은 육체에 속하는 것이지요. 이성에 속할 수 있는 머리 속 관념은 나중에 생기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흄은 이러한 결론을 내립니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이다. 칸트는 이 말을 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흄은 유쾌하고 유머도 있고 그런 사람임을 살펴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감정을 이성보다 높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칸트하면 연상되는 것은 시간 잘 지키는 원칙주의자입니다, 이성을 감정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실천이성비판에도 잘 나타나는데 칸트철학은 흄을 비판하고 넘어서려는 것에 있습니다. 제가 감각기관을 안이비설신 감각대상을 색성향미촉이라고 했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보았지요. 바로 반야심경이지요. 훔의 철학은 블교와 매우 흡사합니다. 흄의 논리로 반야심경을 보면 그것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것은 칸트 끝나고 흄 칸트 반야심경을 묶어서 한번 하겠습니다. 사실 대룩의 합리론자들은 감성은 이성의 활동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지요. 그리하여 감정은 이성에 의해 억누어져야 한다고 합니다.즉 감성은 이성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틀을 강조하는 칸트 역시 이성주의에 속하는 것입니다,
[밴마철] 우리가 황금률을 많이 이야가 했습니다, 황금률 쉽게 말하면 입장바꿔 생각하기라는 뜻을 가진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흄은 이 입장바꿔 생각하기에는 그 밑받침에 감정emotion이 있어야 하고 그 emoion을 바탕으로 한 입장바꿔 생각하기를 공감sympathy 라고 한 것입니다, 칸트는 도덕에 어떤 감정이 들어오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입장바꿔생각하기가 보편적인 것이 되어야지 자기 감정에 휘들려 그렇게 하면 도덕이 원칙을 잃는 것이라고 생각한 갓잊니다. 지금 눈앞에 재난을 당한 사람에게만 공감하고,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재난을 당한 사람에게는 공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덕원칙이 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칸트의 도덕원칙은 법이라는 것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법은 누구나 똑 같이 적용되듯이 도덕원칙도 누구에게나 똑 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칸트에게는 법이라는 형식 틀 이런 것이 강조되는 것이고 흄에게는 감정에 기반한 공감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 다니엘브레이크가 이런 것들을 잘 묘사한 점이 있습니다, 켄 로치 감독은 제가 보기에 흄 주의자입니다, 모든 영화에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메세지가 원칙주의자와 그것과 대결하는 공감주의자들을 대비시켜 놓았습니다, 크게 보면 마르크스 주의자들도 원칙주의자들이지요. 그들에게 감정을 살리라고 외치는 것이 barking mad marxist 이라고 생각합니다.
[밴마철] 이제 다시 선험적 종합판단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선험적이다 종합이다 이런 칸트의 말도 훔에서 출발 한 것입니다, 흄은 선험 a priori 적인 것과 후험적인 것 a posteriori 인 것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안이비설신이라는 감각기관이 색성향미촉이라는 감각대상을 만나서 얻어지는 impression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 후험적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경험을 통과해서 얻는 앎입니다. 이것을 종합판단이라고도 합니다. 그 뜻은 경험이라는 것은 항상 새로운 것이지요. 새로 얻어지는 impressin이 기존에 있던 idea( 이것도 impression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뇌 속에서는 관념idea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와 결합하면서 앎이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험을 통하여 앎이 확장되는 것을 종합판단이라고 합니다, 오늘 하늘이 파랗다고 하면 하늘이라는 말 안에 파랗다는 말은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경험을 통하여 주어에 없는 내용을 새로 덪붙이는 것이 종합판단입니다. 이렇게 보면 흄에게 있어서 종합판단은 경험이후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후험적이라는 뜻을 가진 아 포스테리오리 하다는 말과 종합판단은 같은 것이지요.
[밴마철] 이제 분석판단을 보겠습니다. 파란 하늘은 파랗다고 하면 주어에 이미 파랗다는 말이 들어 있슺니다, 그리고 이 말을 부정하게 되면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즉 파란 하늘은 파랗지 않다고 하면 모순이 되어 말이 되지 않지요. 반면에 하늘은 파랗다는 종합판단은 부정을 해도 말이 성립합니다, 즉 하늘은 파랗지 않다고 해도 말이 됩니다. 또 하나 수학을 보면 1+1=2 입니다.,1+1안에 이미 2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흄은 이것도 분석판단이라고 봅니다. 이런 것은 새로운 경험 impression이 부과되지 않고 그 자체로 그대로 계속 유지되는 것입니다. 경험을 거치지 않는다는 뜻에서 경험에 앞서 있는 것이란 뜻으로 선험적 a priori 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흄에게 있어서 분석판단은 선험적인 것입니다, 이런 선험적 분석판단은 100% 정확성이 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새로운 정보로 impression이 덪 붙여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은 선험적 분석판단일까요? 후험적 종합판단일까요? 흄은 과학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얻어지는 새로운 impression의 확장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당연히 과학은 후험적 종합판단에 속하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필연적 인과관계가 없고 머리 속의 관념들이 반복되는 습관에 의하여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여 규칙을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100%는 없지요.
[밴마철] 훔의 말대로 한다면 인류에게 엄청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뉴턴역학도 100%는 아니게 됩니다. 칸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종합판단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 종합판단이 또 100%짜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합판단이 100%가 되기 위해서는 선험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100% 확실하면서 또 새로운 정보도 제공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선험적 정합판단이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밴마철] 이런 칸트는 흄과 다르게 수학을 일종의 선험적 종합판단으로 봅니다. 7+5=12가 되지요 7+ 5 안에 12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둘이 모여 =12라는 새로운 내용을 덪 붙였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내용을 첨가하면서 100% 확실한 것이 수학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대표적으로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흄을 지지하는 사람은 당연히 칸트를 비판하겠지요. 그런데 이 문제는 너무 복잡하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칸트는 100% 정확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선험적 종합판단으로 수학을 거론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과학도 이런 수학과 같이 선험적 종합판단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물체는 낙하한다는 주어 물체에 술어 낙하한다는 것이 덪붙여 진 것으로 주어에 없는 새로운 정보를 제공는 것이지만 100%이라는 것입니다. 뉴턴 역학은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것입니다.
칸트의 말하는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틀은 결국 인간아 수학과 과학을 할 수 있는 틀을 내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수학과 과학은 자연자체(물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만아 가지고 있는 틀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동물은 수학과 과학을 못하지요. 인간이 가진 그런 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틀에서 중요한 것이 인과관계의 틀입니다. 흄은 자연 그자체에서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은 100%가 아니라고 했지만 칸트는 그 인과관계가 자연에는 없을 지라도 인간이 가진 틀이 그 인관관계를 100%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결국 감각대상인 색성향미촉이 감각기관인 안이비설신을 만나 감각재료를 만들어 뇌로 운성하는 데 그것은 질서가 없는 잡다란 것입니다, 그 무질서의 잡다란 감각재료에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틀이 질서로써 법칙을 부여하기 때문에 인간은 수학과 과학을 할 수 있고 그것으로 근대 문명을 성립시켰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은 그 틀의 초월적 특징을 좀 알아 보겠습니다.
오늘한 것의 잠정적인 결론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근대문명의 핵심은 과학과 법치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입니다, 법치주의라는 것은 도덕원칙이 누구에게나 똑 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에 휘들리지 않는 원칙. 과학은 순수이성이고 법치주의는 실천이성입니다, 이 둘이 근대문명의 핵심입니다. 그러니 칸트를 모르고 근대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중국을 비롯한 비 서구권의 부족함은 무엇입니다, 바로 과학과 민주주의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근대가 저믈어가며 나타나는 폐해도 거기에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과학지상즈의가 이끈 계산하는 마음은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의 삶을 삭민지화하여 황폐화 시킵니다, 감정이 배제된 원칙은 인간을 기계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칸트를 통하여 이 양면성을 동시에 보려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하겠지요.
무엇입니다.—무엇이겠습니까?
과학지상즈의—과학지상주의.
증국 말에 德先生과 賽先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덕선생은 democracy 뜻하고 새선생은 science 를 음역으로 쓴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과학을 높여서 말하는 것입니다. 5.4 운동이후 중국의 지식인들이 썼던 말입니다. 민주와 과학이 서양에 뒤쳐서 결국 서양의 침탈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민주와 과학을 방해하는 중국 전통은 비판받고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며 절대적으로 이것을 서양으로 부터 수입해 중국을 재편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모든 비 서구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리엔탈리즘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서양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해야 한다.서양의 경우는 민주와 과학을 제대로 모르면 덜 떨어진 사람으로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덜 떨어진 사람은 때려서도 가르쳐 사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전형적인 제국주의 논리입니다. 피식민지국은 제국주의에 반항해야 하지만 동시에 서양으로 민주와 과학은 더 배워서 받아들어야 합니다. 자기 공동체를 제국주의로 부터 지켜내며 보듬어 안고 가야 하지만 자기 공동체을 이끌어 온 원리들은 부정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보통 이중구속이라고 합니다. 어쩌다 보니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주주의도 성과를 냈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덜어 냈지만 예전에 거의 모든 지식인들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문학작품의 주제가 이것이었고 사회과학 인문과학의 주제도 이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칸트 철학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Jack Shin] 모두들 머리가 터져나갈 거라 생각이 들지만,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들입니다.
결국 수학을 두고 흄과 칸트의 입장이 정반대가 되었군요.
흄의 선험적 분석판단과 칸트의 선험적 종합판단...
제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그런데 과학이 수학이라는 등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과학 역시 분석판단일 수 밖에 없는 것을 흄이 몰랐을까요?
[쟈스민] 제가 안선생님 설명에서 기억하기로는 수학적 명제는 흄이나 칸트가 일치하나 과학적 명제에서도 칸트는 100%필연성이라고 했고, 흄은 인과적 필연성을 부정했다고...
그래서 탈주술화는 칸트,
탈주술화의 재수술화를 탈피하는 데는 흄이 커다란 영향을 주었죠.
칸트는 수학공식이 과학에도 절대적으로 적용된다, 흄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 것 아닌가요.
칸트가 필연적 인과성을 과학에 부여한 것은 선험적 판단이라는 틀이었다는...
흄은 감각과 지각 사이에 있는 전도몽상을 짚어낸 것 같고요
신선생님 "수학을 두고 흄과 칸트의 입장이 정반대" => 이건 typo라고 이해할게요
수학이 아니라 과학!!! 수학적 명제(인과적 필연성)을 과학에도 적용하는 것이 칸트!(선험적 판단)
과학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흄선생!
[밴마철] 예 다시 한번 정리하겠습니다.흄은 선험적 분석판단은 수학으로 아무런 새로운 내용을 첨가 시키지 못한 논리 형식으로만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00%이지만 새로운 내용이 없습니다. 반면에과학은 후험적 종합판단으로 새로운 내용은 첨가 되지만 100%는 아닙니다, 칸트는 이 증간에100%이면서 새로운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선험적 종합판단을 끼워 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수학과 과학이라고 했습니다. 훔은 1+1=2는 이미 1+1은 2라는 답이 들어 있는 분석판단으로 본 것입니다.즉 이것은 파란하늘은 파랗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칸트는 1+1에는 2라는 답이 없어 파란하늘은 파랗다는 것과 분석판단은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100%이지만 새로운 내용이 첨가된 판단으로 선험적 종합판단이라고 하였습니다.
[쟈스민]
머리에 지진이....^^
[Jack Shin] “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칸트의 이말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다만 내용이 지식으로 바뀌고, 직관은 감각이 아닌 직관 그자체, intuition 으로 그댸로 사용하면 저의 생각과 완전 일치합니다.ㅎㅎ
“지식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오늘도 머리가 터져도 강의를 경청하는 이유입니다. ㅎㅎ
[밴마철] 어려울 것 없습니다. 훔이 말이 좀 더 맞는 말이고 칸트는 그 중간에 뭔가 집어 넣으려니 복잡해 보입니다. 즉 “100%이면서 새로운 내용이 첨가되는 판단” . 흄의 입장은 100% 이면 내용이 없는 형식이라고 봅니다. 내용이 있으면 100%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칸트는 욕심을 부려 100%이면서 새로운 내용이 들어가는 판단(선험적 종합판단)을 새로 정립한 것입니다. 너무 복잡하면 다른 것 없애버리고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것이 100%이면서 새로운 내용이 들어 가는 판단이라고만 알고 계셔도 됩니다.
[쟈스민]
흄;
수학=선험적 분석판단
(100%맞음)
과학=후험적 분석판단
(달라질 수 있는 틈 있음)
흄은 이렇게 쉽게 정리가 되는데
칸트;
수학공식에 분석판단 아니다 100%이지만 첨가된 판단으로 선험적 종합판단이다
칸트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ㅠㅠ
아~ 이미 답을 주셨네요^^
[밴마철] 자기가 새로 만든 판단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도 여전히 논란이지요. 저희 같은 아마추어는 여기서 그만…
[쟈스민] 휴~~ 다행입니다 ^^
[밴마철] 나중에 겉으로만 살펴 볼 기회가 있겠지만 춈스키는 가장 강력한 칸트주의자이고 칸트의 틀 이런으로 자기 언어학의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흄의 인과론 부정은 그것을 반격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다며 항복하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한마디로 어렵다는 것이지요.
뉴턴 역학이 아인슈타인이나 양자역학이 나오기 전에는 100%이면서 내용이 있는 것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칸트의 선험적 종합판단도 있는 것으로 믿고 살았습니다, 이것을 기계론적 결정론이라고 합니다. 200-300년 정도 독점체계입니다. 그런데 아인수타인 양자 역학이 나오니 미세할지라도 그것은 100%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100%이면서 새로운 내용이 첨가되는 판단은 없다는 것입니다. 위의 올리버 삭스에 나오는 대목 “거대한 이론이 완고한 사실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입니다. 이런 구경 우리에게도 재미있지요.
[쟈스민] 헉... 칸트의 틀도 머리에 쥐나게 어려운데 흄은 더욱 어렵단 걸로 들리네요. 하긴 예전에 도식같은 걸로 설명하실 때 하나도 이해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흄을 잘 몰랐는데 안선생님 강의 다시 들으니 시대를 훨씬 앞지른 철학자였던 거 같습니다. 어떻게 그 시대에 이미 요즘 뇌과학자들이 힌트를 받는 생각들을 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안선생님 설명 듣고 다시 보니 typo라고 생각한 게 제 오해였네요..ㅎㅎ
쏘리~~
가만 보니 제가 유독 신선생님 말씀에 오해를 많이 하는 듯 하군요. 그래서 조용히 눈팅만 하면서 계속 오해를 쌓아가는 것보다 부딪혀 깨뜨려가는 쪽으로 방향 선회합니다(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