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 화.칸트.물자체.초월.아리스토텔레스.메타
[밴마철] 보통 초월transcendence이라는 말은 신에 대하여 썼습니다.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빨갛고 둥근 과일을 가르켜 사과라고 말하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어린아이는 사과라고 하는 개념concept를 가지게 됩니다. 이 사과라는 개념을 가지게 되면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빨갛고 둥근 과일을 사과라고 판단하여 이해해 알게 됩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 과정이 너무 너무 신비합니다. 사과 배 감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하여 어떤 개념을 가지개 된다는 것이 너무 신비롭습니다. 사과를 그냥 많이 보았다고 해서 사과에 대한 개념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과 농사를 짓는 농부보다 학자가 사과의 개념에 더 잘 알 수도 있습니다. 사과라는 개념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사과를 다 포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구체적 모습이 없어야 합니다. 구체적 모습이 없으면서 이 세상을 모든 사과를 사과라고 해 주는 것을 사과에 대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과의 개념은 태어나가 이전 세계인 이데아의 세계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바로 플라톤입니다. 플라톤에 의하며 이상적 개념으로 사과는 진짜이고 이 세상 현실적으로 있는 사과들은 다 가짜가 되고 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말에 찬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과를 보아야지 사과의 개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면 큰 난관에 봉착합니다. 현실적 사과는 구체적 모양을 띠고 있지만 개념적 사과는 구체적 모습을 띠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영어 배우면서 the apple 과 a apple 의 차이에 대해 많이 들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the apple 은 구체적 사과 a apple은 모든 사과를 지칭하는 것으로 개념적인 사과입니다.
결국 아리스터텔레스도 구체적 사과보다 개념적 사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슺니다. 이 개념적 사과를 사과의 본질essence 라고 합니다. 본질이 중요하지 현상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이 세상이 만들어질 때 어떤 빛이 인간의 영혼에 들어와 모든 사물들의 본질 혹은 개념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빛을 자연의 조명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들어와서 그것이 god가 되는 것입니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개만 유일하게 세상을 개념적으로 본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 영혼에게만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신은 인간을 초월해 있으면서 인간에게 그런 능력을 영혼에 부여한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개념적으로 본질적으로 안다는 것은 우리를 초월해 있는 신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칸트는 기본적으로 순수이성에서는 신을 부정합니다. 물자체와 현상에서 우리는 물자체는 모르고 단지 현상만 안다는 것이지요. 물자체를 Noumena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우리말로 예지계 혹은 본체계 훅은 실재계로도 합니다, 반면에 현상은 phenomenon라고 하고 나타남appearance 라고 하고 또 가지계 intellectuality 라고도 합니다. 이 intellecual은 지성 혹은 오성이라고도 번역하고 가지계可知界라는 말 그대로 알 수 있는 세상 지성으로 파악될 수 있는 세상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물자체 본체계 예지계는 같은 말이고 현상계 가지계는 같은 말이 됩니다. 칸트가 물자체는 모른다는 말은 본체계나 예지계를 알 수 없다는 뜻과 같습니다, 알 수 없는데도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성의 한계를 뛰어 넘은 것으로 진정한 지식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뜻은 비트겐쉬타인 “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고 말한 것과 거의 같은 뜻이 됩니다. 우리는 현상으로 알려진 것만 말할 수 있고 그것 너머 물자체 예지계 본체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성의 한계를 넘어 선 것으로 공염불과 같다는 말입니다.
신을 부정했다고 하기보다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칸트가 말하는 초월Transcendental을 신과 연관 지으면 안됩니다. 칸트의 초월을 신과 연관지으면 큰 오해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틀은 인간내부에 있는 틀입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쓰는 초월과 반대되는 내재immanence의 뜻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개념을 가진다는 것은 신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고 인간내부에 내재된 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틀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의 상위에 있기 때문에 초월적transcendental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개념을 가지게 하는 틀이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월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의 위치를 인간 이성이 대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중심주의입니다.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으면서도 개별적인 인간의 생각을 하게 하는 것으로 초월적 틀이라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칸트 이후 독일철학은 이 초월적 틀이 무엇이냐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것을 초월적 관념론 transcendental idealism 이라고 하고 줄여서 관념론idealism 이라고 합니다. 칸트 이후 피이테 쉘링 해겔이 이 문제에 집중한 것입니다.
meta 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metaphysics 라는 말을 쓰면서 유명해 진 것입니다, 즉 physics 물리적 세계를 넘어서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meta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이 경우 아라스터텔레스나 중세신학에서 쓰는 초월과는 거의 같은 뜻이 되지만 칸트가 쓰는 초월과는 좀 다를 수 있습니다,,칸트가 쓰는 초월은 내재라는 뉘앙스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칸트철학은 일본을 통하여 우리에게 소개된 것입니다. 그 일본사람들이 transcendental 을 그냥 초월이라고 하면 증세신학 같은 데서 말하는 초월과 혼돈을 일르킬 것을 염려하여 그것을 선험적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럴 경우 a priori 는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가 고민이 됩니다, 그리하여 그 a priori는 선천적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a priori는 선천적 transcendental은 선험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apriori는 경험하기 이전이라는 뜻으로 선험적이라는 번역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transcendental 은 그 말 자체에 초월이라는 뜻이 있으므로 초월적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a priori는 선험적 transcendental은 초월적 이렇게 짝을 이루는 것이지요. 이 번역문제로 재판까지 갔다는 이야기 예전에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든 선천적 선험적 이라는 짝과 선험적 초월적 이라는 짝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칸트을 설명하는 글에서 선험적 주체 선험적 구조 선험적 틀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것은 a priori가 아니고 transcendental 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초월적 주체 초월적 구조 초월적 틀도 transcendental 의 뜻으로 서로 같다는 것을 염두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오늘날 칸트를 설명하는 글뿐만 아니라 언어학을 비롯한 많은 인문학 책에서 선험적 구조 선험적 틀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그럴 경우 그것이 transcendental structure 혹은 transcendental frame이라는 것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Jack Shin] 이 용어나 개념 때문에 혼란스러워 할 때 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철학이 개념에서 시작해서 개념으로 끝난다고 할 만큼 중요한데...
차라리 위버멘쉬 처럼 원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영원히 개념 이해는 불가능할 듯 합니다 ㅠㅠ.
실제로 안토니오 다마지오 책을 읽다가 감정, 정서, 느낌 등의 개념이 혼란스러 포기 했었는데, 나중에 영어로 개념을 보고서 좀 정리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글 번역만으로도 이해를 모두 마치신 분들이 많더라구요.ㅎㅎㅎ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초월을 인정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후계자는 초월의 근거를 신에 두고 있고 칸트는 인간의 이성에 두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밴마철] 예 그렇습니다. 인간이성이 신의 위치를 대체하게 되어 인간중심주의로 간다.
오늘 이문규 선생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선생님도 같이 공부하기를 원하시어 초대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