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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화.칸트.본체계.현상계.헤겔.자유.민족

마철방 2023. 12. 27. 08:53

[밴마철] 어제 잭신 선생님이 지적했듯이 칸트는 선험적 통각을 통하여 인과관계에서 자유로 넘어가는 통로를 만든 것입니다, 순수이성에서 실천이성으로 넘어가는 통로를 만듭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명제: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인과관계는, 세계의 여러 현상들이 전체적으로 그것으로부터 이끌어내어질 수 있는 그런 유일한 인과관계가 아니다.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유에 의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반명제: 자유라는 것은 없다.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자연법칙에 따라서만 생겨난다.

 

​이것이 이율배반antinomy 입니다. 서로 정 반대되는 모순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본체계noumena와 현상계phenomenon 으로 나눕니다, 현상계는 인과법칙이 지배받는 세계 본체계는 자유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현상계에게 있는 나는 인과법칙에 따르지만 본체계에 있는 나는 자유에 의해서 활동할 수 있다. 그리하여 물자체(thing itself)를 본체계 자유의 세계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물자체 본체계는 자유이고 그 물자체가 촉발시키는 현상계는 인과관계의 앎의 세계입니다. 인과관계에서 자유가 없음으로 해서 그것을 따라야 하지만 물자체는 자기 자신이 원인이 된다는 뜻잊니다. 자기 스스로의 자발성에 의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인간은 스스로 도덕의 주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모순된 두 새계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에 당연히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대표적으로 헤겔입니다. 헤겔은 변증법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지금 이야기 중요합니다. 비가 잠시 그쳐 마늘 좀 심고 저녁 때 좀 더 하겠습니다, 의문 사항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면 저녁 때 같이 좀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현상계에서 살면서도 동시에 본체계에서도 살고 있다는 말은 지금 여기가 천당일 수 있다는 말을 함축하는 것입니다. 천당이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자유가 충분히 실현되었을 때 그것이 바로 천당일 수 있다 그런 뜻을 함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유전연기에 의하여 인과법칙에 의하여 지배를 받고 살지만 다른 한편 그 유전연기를 끊어내는 환멸연기를 통하여 지금 여기서 자유를 얻어 해탈할 수 있는 대승불교의 논리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Jack Shin] 반대로 말하자면,우리가 현상계와 본체계를 동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그래서 여기가 천당이기 때문에 진정한 천당은 없다고도 해석할수 있겠네요. 

 

또 인과법칙에 지배받는 유전연기를 끊고 환멸연기를 통해 이미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 만큼, 해탈이 더 이상 필요없다거나 있을 수 없다는 논리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밴마철] 적절하게 타임에 문제를 잘 제기해 주셨습니다. 보통 칸트 피이테 쉘링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철학을 독일 관념론이라고 합니다, 관념론은 Idealism 의 일본식 번역어입니다. 이것을 우리말로 옮긴다면 이상주의가 더 합당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Idealim은 idea에서 온 말이고 이것을 처음으로 말하기 시작한 사람은 플라톤입니다, 플라톤은 이데아계와 현상계로 나누었지요. 그것이 기독교에서 와서 하늘 나라(천당)와 지상의 나라로 나누어 구분하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독일 관념론idealism은 바로 이 이데아의 세계 훅은 하늘나라를 이 지상에서 구현하겠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칸트는 여기에 대해 인간은 자연의 입법자로 자연을 인간의 의도대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순수이성에서 말한  것입니다. 다른 한편 실천이성에는 인간이 자유를 바탕으로 규칙을 정하여 자유를 완성해 나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제 신의 계명이 아니라 인간이 자발적으로 규칙을 정하고 스스로 그 규칙을 실천해 나갈 수 있음을 말하려는 의도를 밝힌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 본 스트븐 핑거가 말하는 것이 바로 과학과 자유의 이념의 확장으로 결국 완전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이데계 혹은 하늘나라(천당)을 실현할 수 있다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 

 

이 점을 좀 더 명확히 한 사람이 헤겔입니다. 헤겔은 종교보다 철학이 우위에 있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종교는 무한자를 저 세상(하늘 나라)에서 찾지만 철학은 바로 그 무한자를 지상에서 찾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자유의 이념이 확대되어 궁극에 이르르면 그것이 바로 종교에서 말하는 무한자가 구현되는 것으로 봅니다, 이런 자유의 이념을 이끌어 가는 것을 세계이성이라고 합니다. 각 민족국가는 이 자유의 이념인 세계 이성을 실현하는 장입니다. 그리하여 그 세계이성을 가장 잘 구현하는 민족국가로 다른 국가들을 선도하여 다 모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엿장수 맘대로 안 됩니다, 모든 국가가 민족중흥하면서 세계공영에 이바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그것이 전쟁입니다. 2차 대전이 그런 것입니다. 헤겔좌파는 민족보다 계급을 내세워 역사법칙을 말하였습니다,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 공산제로 역사가 자유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진보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산제는 사실 이 지상의 세계에서 구현한 하늘나라(천당)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을 인간의 맘대로 해 나가며 이 세상을 천당으로 만든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깊은 의문이 듭니다, 이렇게 근대적 낙관론에 의심하고 회의하는 것이 포스트모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농사를 지으면서 얻은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은 내 맘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씨를 뿌리며 수확을 기다리며 잔뜩 기대하면 꼭 예기치 않은 문제가 터집니다. 제 수준에서 모든 것을 생각한 것이만 꼭 전허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깁니다. 오리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좀 비관하고 있을 때 그럭저럭한 수확을 거둘 때가 있습니다.  근대는 기계론적 결정론에 의해 미래를 예측predictable 하다고 보지만 포스트모던은 unpredictable 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나친 낙관론 지나친 회의론 다 문제가 있지만 저는 약간 unpredictable 에 기울어 져 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칸트가 말한 자유의 세계의 실질적인 구현이 헤겔을 거치면서 민족국가 공산주의로 나타난 것입니다. 모두 이 세상에서 천당을 구현한다는 뜻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2차대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히틀러의 나찌는 민족사회주의 라는 뜻으로 헤겔철학이 그 이론적 바탕이 된 것입니다.

 

국민교욱헌장이 있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다 외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 닜다. …세계 공영에 이바지 한다….이것을 박종홍이라는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만들었습니다, 헤겔 철학의 민족국가론에 기반한 것입니다.일본은 2차대전 때 교육칙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국가의 일원으로 천황에 충성하며 하나가 되자. 히틀러 나찌 민족사회주의도 같은 것입니다. 아리안 게르만 민족이 세계이성을 선도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