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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수.헤겔.절대정신.공동체.영성운동.뉴에이지.니체.

마철방 2023. 12. 31. 11:41

[밴마철]  배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니 번쩍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 단기적으로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은 해겔입니다. 헤겔의 하다보니 절대정신이 나왔습니다. 절대정신에 무엇이냐는 것을  디테일하게 논하는 것은 우리같은 아마추어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도 전체적인 큰 아웃트 라인으로 이야기 해 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하다보니 지금 약간 삼천포로 빠져 있습니다. 이제라도 그것을 좀 정리해 보겠습니다. 저는 절대정신이라는 것이 운명을 이끄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헤겔 이전 시대만 하더라도 이것이 신의 고유영역이나 다름 없었는데 헤겔은 변증법을 통하여 이것을 이성적 논리로 해석해 낼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인류 모두가 나아갈 역사의 수레바퀴의 방향을 알 수 있다고 한 셈인데 이를 위하여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사람도 있게 되는데 이것은 인류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키에르케고르 니이체입니다. 그런 수레비퀴에 깔리지 않는 쪽으로 살겠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그 운명의 힘이 철저히 개인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적 자유가 사적 자유를 논의하게 된 것입니다. 이 운명의 힘이라는 것을 머리 속에 염두하면 좀 어려운 하이데거의 존재개념도 감이 좀 옵니다. 결국 인격적인 신이라는 것이 절대정신이라는 비인격적 실체 같은 것으로 변화된 것은 헤겔의 큰 공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니이체에 와서는 이 운명적인 힘이 철저하게 개인에게 내재화되는 것으로 봅니다. 그것이 초월적 신은 죽었고 내재화된 신은 살아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재화된 신이라는 것이 이미 인격적인 신 같은 아니고 이 역시 비인격적 것으로 “힘으로 의지” 같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의 비인격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비인격적 존재를 인격적인 신들 보다 우위에 둔 것이 폴 틸리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발전의 과정에 니이체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한번  올렸지만 폴 틸리히는 그런 존재개념을 형성하는데 니이체의 역할이 컸습니다. 어제 올렸던 목사님의 뉴에이지 종교관의 설명을 보면 뉴에에지 종교관의 확립에 니이체의 영향이 제일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적 속박에서 벗어나 사적 자유를 찾는 것의 기반으로 신적 인간을 천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어제 동영상을 올려 본 것입니다.

 

하다가 보니 운명적인 힘이라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이 중국 한국철학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논의 되었는가도 좀 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해겔의 변증법으로 돌아 가려고 생각합니다. 

 

https://images.app.goo.gl/pTzHQiYoERqNLr2r7

 

Google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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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그림입니다. 피가소가 이 그림을 보고 나서 “모든 미술은 알타미라 이후 쇠퇴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말을 듣고 저는 고대 그리이스 인들이 가졌던 종교의 원형적 모습인 우주적 기운으로 에테르ether 와 인간이 가지는 기운인 pneuma의 합일 같은 논리가 알타미아 동굴의 벽화 같은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인도의 브라만 아트만의 일치 중국의 천인합일 이런 기본적 틀이 같은 것 같습니다, 이런 틀을 이용하여 공동체의 결속을 노리기도 하고 반대로 공동체에서 도망가려는 것도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모두가 복속해야 개념적 틀을 만들기도 하였고 그 개념의 그물망으로 부터 도망가며 해방되려고 한 것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제국의 논리 국가의 논리입니다. 자발적 노예를 만들어 권력에 봉사하게 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사람들은 그런 개념의 틀을 깨면서 도망가려고 하는 사람들인데 이것이 바로 영성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의 권력이 비대해지면 사람잡아다 전쟁에 동원하지요. 큰 전쟁이 끝나면 여기서 대한 반성이 신하게 일어납니다. 이런 뜻에서 영성운동이 지금 시기 모던이나 포스트모던에만 있게 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미약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전면으로 떠 오르게 된 것 같습니다. 보통 지식은 권력에 아부하는 형태로 있어 온 것인데 여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호응은 니이체 하이데거 포스트모던에 와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정리하면 “공동체의 뜻대로 살겠다 vs 내 뜻대로 살겠다” 이런 것들의 충돌과정이 있었지만 전자가 항상 승리하는 것으로 나아갔지만 지금은 어느 때 보다 후자에 큰 힘이 실리고 있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요즘 인생은 60부터 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젊었을 때는 먹고 살고 처 자식 부양하려면 공동체의 뜻대로 살 수 없는 운명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해방된 60 이후 정말 내 뜻대로 살아 보고 싶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뉴에이지 관련된 책들을 읽어 본 것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동영상을 통해 구경하는 정도입니다. 보고 있으면 이런 이야기들이 거의 대부분이 케에르케거르 니이체 하이데거 틸리히 이런 사람들 이야기를 약간 응용변화시킨 것에 블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런 것이 고전의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 알고 나면 응용변화도 쉽게 이해하지만 기본 전제된 이야기 모르고 응용문제에 매달리면 좀 빗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키에르케고르 니이체 하이데거는 인간이 죽는다는 유한성을 굉장히 강조하면서 그 운명의 힘 같은 것을 논합니다, 그럼으로해서 그 운명적인 힘의 한계도 분명히 말하여 집단적이고 무한한 신비적인 것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들이 운명의 힘 창조의 힘에서 나오는 신비스러움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예술적인 것에 국한시키지 그 너머 전면적인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파이트 클럽”영화에서 보았듯이 그것이 무한하다고 생각하여 집단을 결성하면 거기서 부터 다시 구속입니다. 나이 60 넘어 이제 겨우 내 뜻대루 살아보겠다는 염원을 세웠는데 이것 다른 어떤 것에 귀속시켜 다시 구속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비적인 것이 있다면 저에게만 남겨 두고 싶습니다. 이것을 공유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저와 같이하는 공부를 통해 그런 곳으로 가는 분이 있을까? 항상 염려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왕양명이 한 때 신통력을 얻어 저 멀리서 연락도 없이 오는 친구를 영접하러 종을 보낸 일화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당연히 그것 배우려고 했겠지요. 이것 단호히 뿌리치고 그런 수행방법을 비판한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도 곧 다들 리타어하실텐데 그 이후의 삶에 다시 질곡의 구속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어떤 구속에서 풀려나 내 뜻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푸코는 이것을 예술적 삶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에 맞는 성적 파트너 만나고 자기에 맞는 요가 운동 같은 것 하나 하고 자기에 맞는 움식 만들어 먹고 자기과 통하는 사람들과 진실한 대화 좀 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떺게 보면 너무 쉬운 것 같지만 여기에는 칸트 헤겔의 비판이 강하게 들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쓸데없는 짐을 지지말고 즐거움이 바탕이 되어 금욕적인 삶은 살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인간의 유한성의 깊은 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더 큰 즐거움을 얻는다는 목적으로 고통스러운 요가를  운동을 한다던지 더 큰 건강을 위해 먹는 즐거움까지 제한하는 것 등은 예술적 삶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더우기 어떤 집단을 결성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지요. 가끔 뉴에이지 동영상 보면 이런 유한성을 빼고 무한성만 이야기하면서 더 큰 즐거움을 위해 금욕적 고통을 이야기하는데,저에게는 좀 많이 거스릴 때가 있습니다.

 

내 뜻대로 산다는 것을 잘 이야기하는 것이 니이체의 낙타 —사자—어린아이로 정신의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의는 내일 하려고 합니다. 의견 있으시면 주시면 같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니이체 사상의 핵심요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일 논의로 니이체 대충 마치고 중국의 천인관계서 운명적 힘에 대해 좀 하려고 합니다.

 

http://kwelltimes.com/news/view.php?idx=887

 

니체의 세가지 인간 유형

철학과 철학자 이야기는 다소 따분하게 느껴진다. 나도 그랬다.우선 이해하기 어렵고,진부하다고 생각들어 거부감 마저 들었던 철학이다.사회복지학을 공부하다보면 문제해결중심의 실용학문

kwelltimes.com

 

[Jack Shin]  안선생님의 강의내용을 대략적으로 이해 및 수긍을 하면서도, 일견 난해하게 전개하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ㅎㅎ 

 

......

저는 절대정신이라는 것이 운명을 이끄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헤겔 이전 시대만 하더라도 이것이 신의 고유영역이나 다름 없었는데 헤겔은 변증법을 통하여 이것을 이성적 논리로 해석해 낼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언급할 때, Subject인지, subjectivism에서 말하고 있는지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이에 대해 설명하고 계시지만...

 

이렇게 보면 니체가 말한 운명과 헤겔이 말한 그것이 확연히 다르겠지요. 개인적으로 볼 때 subjectivism 의 시작은 키에르케고르가 아닐까 합니다. 

 

Subjectivism 을 추구하겠다고 모인 무리들이, 예컨대 뉴에이지 그룹, 결국은 Subject 에 휩쓸려 버리는 자가당착은, 안선생님도 지적하셨지만, 영원한 인간의 숙제입니다.ㅠㅠ 

 

[쟈스민] 저도 안선생님 강의가 때로 어렵게 느껴지지만 좀 재밌기도 합니다. 신이 죽은 시대의 허무주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극복해가는지 흥미롭게 지켜볼 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