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 수.마테오 리치.과학.아담샬.혼천의.중국.과학기술
[밴마철] [오전 7:25] 마테오 리치 이야기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마테오리치가 북경을 방문하기 전에 남경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음과 같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오전 7:26] https://images.app.goo.gl/erRTPbRfyRkSCVvz6
제목: Nanjing Purple Mountain Observatory, Jiangsu
Google에서 검색된 travelchinaguide.com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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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34] 이것은 혼천의라고 하여 우주가 운행하는 현상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이것 이외에도 여러가지 천문관측기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이것을 만들어 놓고 사용도 안하고 방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정화의 원정에서 사용했던 배와 그 배의 설계도 등을 다 태워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과학이 사회문화적 힘과 결합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 수 있는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전 7:46] http://m.dongascience.com/news.php?idx=8547
이슬람 과학기술역사박물관에 가다
이스탄불에 위치한 이슬람 과학기술역사박물관. - 이스탄불=권예슬 기자 yskwon@donga.com 지난달 3일 터키 이스탄불 귈하네 공원 안에 위치한 ‘이슬람 과학기술역사박물관’을 방문했다. 토요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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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50] 저 위의 남경 혼천의는 유래가 있는 것입니다. 몽골의 원나라 때 바그다드 근처에 당시 최고의 천문학자 잡아다 천문연구를 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각종 천문기구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코페르니쿠스의 학설도 이 이슬람 천문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원나라 때 중국의 과학기술은 놀라운 것이었으나 명나라에 와서 그것이 유지되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전 8:08] 마테오리치는 여기서 큰 힌트를 얻습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전도가 씨가 잘 먹히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전도 시키기 위해 서양에서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천문학을 들여오면 중국인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교황청에 편지를 써서 천문과학자 신부를 보내주기를 요청합니다, 그리하여 아담 샬이 중국에 오게 됩니다. 아담 샬은 로마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 때 그를 가르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갈릴레이입니다. 로마 아카데미에서 아담 샬은 3등 정도 했고 테렌스라는 사람이 1등이었는데 테렌스도 중국에 오게 됩니다. 이 말은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이 중국에 왔다는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서양과 같은 획기적인 발전은 못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는 것이고 그 사회문화적 배경을 선도하는 철학적 논리가 없었던 것도 이유 중의 하나 였던 것입니다.
[오전 8:44] 예전에 비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 소니의 베타방식이 있었고 그외 다른 회사들의 VHS 방식이 있었습니다. 사실 소니의 배타방식이 기술적으로 더 우위에 있는 것임에도 불구라고 VHS 방식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소니가 자기들의 독점체계를 만들려고 했으나 VHS 사람들이 연합해서 사용자가 VHS가 더 많아짐으로 해서 VHS가 승리를 했습니다, 과학이론도 이런 측면이 많습니다. 오늘날 우주천문설로 빅뱅설을 비롯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많은데 어느 것이 옳은지 잘 모릅니다. 다만 어느 것이 그 설명의 설득력이 높아 더 많은 과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정설로 채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매일 수 많은 과학논문들이 제출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설득력이 높아 지지하는 사람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 이론이 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것이 사회 문화적 배경과 연결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Jack Shin] [오후 12:17] 근대에 와서 서양이 동양보다 앞섰다 라는 여러 가설과 실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학술적 자료의 축적과 비판, 발전이라는 점에서 부족했던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컨대 황샘의 남편인 죤이 공부했던 더럼 대학 다큐를 보았는데, 그 대학은 옥스포드와 캠브짓지를 앞세우고 지어졌음에도, 그 시기가 1117년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지금과 다른 대학의 형식이었겠지만, 그 건물과 배움의 기반이 고려시대 중후반에 시작되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