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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4 월.니체.불교.사적자유.영성.생성.소멸.창조.

마철방 2024. 1. 12. 10:48

[밴마철] [오전 7:04] 현대는 정치적인 공적 영역의 자유는 많은 부분이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적 영역에서 더 많은 부분에서 무언가에 의해 구속되었어 있다는 압박감을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이런 압박감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종교적 심성이 필요합니다. 즉 압박감으로 벗어나려는 사적 자유의 갈구가 더 커져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럼으로서 그런 자유를 갈망하는 형태의 종교적 심성이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영성의 요구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밴마철] [오전 7:10] 언제인지부터 잘 모르겠으나 현대 불교에서는 불교의 논리는 “지금 여기”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런 논리가 용수에게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부각되어 이야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최근에 와서 부각되는 것은 니이체에서 부터 이어져 온 종교적 세속주의에 대한 응답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불교가 니이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거꾸로 니이체가 블교에 영향을 미친 것도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밴마철] [오전 7:22] 세상에서 받는 개인적 압박감을 크게 느끼게 되면 그것을 벗어나려는 심리적 기제로 이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하는 무상감 허무감이 들 수 밖에 없는 측면에 있습니다. 그 허무감을 벗어나 기쁨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니이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니이체에 있어서 고통과 기쁨 생성과 소멸 창조와 파괴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압박에 의하여 허무나 무상감을 느낀다는 것은 그것을 벗어나 기쁨을 찾으려는 시도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 해방적 느낌을 향해 가려는 심성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밴마철] [오전 7:27] 구속적 압박감 때문에 자기의 바닥 모를 자기의 심연을 들여다 보는 계기가 생기고 거기서 느끼는 허무감 무상감이 있고  그것을 기쁨으로 전환 시키려는 시도 ….

[밴마철] [오전 7:43] 하여간 제 생각으로는  니이체는 천상의 인격신에서 대지의 몸으로 종교적 방향을 트는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구속하는 인격신에서 자유에 대한 영성으로 종교적 방향을 튼 것입니다. 본 회퍼에서 틸리히로 가는 과장은 바로 니이체를 통해 그 신학적 방향을 튼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