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1 월 간트.존재와 당위.목적론.기계론.니이담.율곡.천인감응.주술적정원
[밴마철] [오전 6:07] 이것은 기계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수학적 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신주 선생이 암에 걸렸나요? 참 안타갑네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 주셨네요. 우리가 칸트를 공부했습니다. 칸트 이야기 핵심은 바로 과학의 세상인 순수이성과 종교윤리 세상인 실천이성을 구분한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순수이성에서는 목적론을 강하게 배제하여 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덕 양심의 근거로는 신을 요청합니다. 이것을 존재와 당위의 구분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이 신을 믿는 것은 이런 칸트의 논리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동양에서 왜 과학을 발전시키지 못했느냐? 라고 했을 때 가장 유력한 해답이 바로 존재와 당위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니이담이 본격적으로 이야기 한 것인데 가장 널리 인정되는 이야기 입니다. 사실 기계론이라는 것이 시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시계라는 것이 태엽을 감아 놓으면 자동으로 톱니바퀴들이 물려가면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동과정을 수학적 원리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데까르트는 이 세계를 이런 시계같은 것으로 본 것입니다. 스피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시계로 파악한 사람들을 기회인론occasionalism 이라고 합니다, 원인과 결과가 기계처럼 맞물려 지고 계산도 다 가능합니다. 이랬을 때 신은 잠자는 신 sleeping god 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한 신은 눈먼 시계제작자 blind watch maker 가 됩니다. 신이 눈이 멀었다는 것은 신이 우리를 내려다 보면서 상과 벌을 주는 형식의 기적 같은 것을 행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눈먼 시계제작자가 바로 목적론을 배제 한 것입니다.
니이담 이야기로 돌아오면 시계는 중국이 먼저 만들었고 그 원리도 중국이들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양은 시계를 받아들여 널리 이용하고 철학적 대상도 되었는데 중국은 왜 그러지 못했느냐? 이런 의문을 가진 것입니다, 사실 중국의 시계는 물 시계로 그 크기가 집채만한 것입니다. 그것이 서양으로 전파되어 작은 벽걸이 괘종시계 같이 변하는데 태엽이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마테오리치가 중국에 왔을 때 이 시계를 황제에게 바쳤습니다. 당시 시계는 고장이 잘 일어나 마테오리치는 시계수리자 명분으로 북경에 체류하게 되었습니다. 어찌되었든 데까르트 스피노자 등은 인간을 시계와 같은 자동기계로 파악했습니다.
주자학은 존재와 당위를 구분하지 못한 것입니다. 주자학에서 이런 문제의식은 있었습니만 칸트 같은 철학은 없었습니다. 이 존재와 당위의 문제를 과거시험으로 제출했고 그 대답을 써서 장원급제한 율곡의 답안지 한번 보고 가겠습니다.
[] [오전 6:46] https://m.blog.naver.com/brucelee55/150068209113
율곡 이이 천도책(栗谷 李珥 天道策)_1558년 명종 13년 별시 과거 장원 답안
問。天道難知亦難言也。日月麗乎天。一晝一夜。有遲有速者。孰使之然歟。其或日月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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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율곡의 답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인감응(天人感應) 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유교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은 한나라 때 동중서라는 사람이 주장한 것입니다. 그는 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한다는 동기감응론을 주징하였습니다. 자식과 아버지는 서로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가 죽더라도 그 기운이 자식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여 묘자리 풍수 설 같은 것이 나온 이론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해빛이 비치는 밝은 곳에 사는 사람은 밝은 생각을 가지고 어두침침한 곳에서 살면 생각도 그렇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택 풍수설이라고 합니다. 집자리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 기초하여 하늘의 기운과 인간의 기운은 서로 감응하고 통한다는 것이 천인감응론입니다. 인간의 대표자는 황제입니다. 황제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은 서로 통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태평하면 황제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이 잘 감응하는 것이고 세상에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있으면 황제의 잘못이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 자기의 잘못을 빌어 하늘의 운행을 정상적으로 돌려야 한다는 그런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왕충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을 비판하였습니다. 어떤 효자가 있어 겨울에 부모를 위해 약초를 구하기 위해 산에 갔다가 호랑이에 잡혀 먹혔습니다. 만약에 하늘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이런 효자가 잡혀 먹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악인이 현실적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하늘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 악인에게 벼락을 내려쳐 죽게 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하늘은 일정의 자연의 필연적 법칙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양 근대에서 말하는 sleeping god와 거의 같은 합리적 사고 방식입니다. 즉 하늘의 뜻 목적을 배제시킨 것으로 반 목적론적 사고 방식입니다.
자연은 착한 사람에게 어떤 복을 주고 악인에게 벌을 주는 것 없이 그 자체의 물리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왕충의 천인분이(天人分二)사상입니다. 주자는 하늘을 이치라고 하여 천즉리(天卽理)를 말합니다. 이 때 천즉리는 즉 하늘은 이치이다라거 한 것은 바로 왕충이 말하는 물리적 법칙으로 하늘을 말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만약에 하늘이 일정한 법칙으로 움직이는 원리라고 하면 가뭄이 들었다고 기우제 같은 것을 지내는 것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동기감응에 기초한 조상제사도 없어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리학 사회에 이런 것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요.
사실 주자는 철학적 이론으로는 이런 것을 용인하지 않았습니다.그리하여 그 이전 시대에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대폭 즐이려고 했습니다. 조상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점은 고려시대에서 성리학의 조선시대로 넘어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에서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그 제사를 통해 얻은 감으로 정치를 한 것이 많습니다. 이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다 일소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조광조는 그런 제사를 다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임금도 천인감응이 아니라 일반인과 같이 천즉리의 입장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처형된 것입니다. 성리학에 들어와서 그런 미신적 사고를 많이 벗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다 쓸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왕이 자기 자신의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좀 인정하여 문묘 같은 것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사대부들도 자기 조상의 제사를 강화하여 자기 문중 세력을 강화하려고 한 것이 있게 된 것입니다.
막스베버는 이런 유교사회를 보고 주술적 정원(magic garden)에 놀았다고 하였습니다. 철학 자체로는 합리성을 가졌지만 그것을 철두철미하게 밀고 나가지 못하고 주술적 정원에 놀아 나면서 근대적 자본주의로 나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는 이 막스베버의 이 이야기는 진짜 천재적 발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저기 위에 있는 울곡의 답안은 바로 천즉리라는 것을 대전제로 하고 있으면서 천인감응을 용인하는 답안입니다. 즉 합리적 이치를 말하면서도 주술적 정원에 놀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목적론의 세계에서 근대 기계론적 결정론에 가는 것에는 바로 하늘을 하나의 물리적 법칙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계몽주의의 이신론Deism 이라고 하고 sleeping god 라고도 하는데 주자학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중국에 와서 주자학의 내용을 편지를 통해 서양에 전달했는데 서양의 계몽주의자들은 이것을 보고 크게 각성하는 계기가 된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시계의 원리를 먼저 파악하고 물시계를 만들었지만 그것을 철저히 더 발전시켜 괘종시계로 못나간 것과 유사합니다. 서양은 그 원리를 철저하게 적용시켜 기계론적 결정론이라는 사상을 만들고 보편화 시킨 것입니다.
저기 위에 과거 시험문제는 천즉리와 천인감응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논하라는 문제입니다.
[Jack Shin] [오전 10:58] 그렇지 않아도 무슨 과거 시험이 우주의 원리와 자연의 조화, 인간사의 이치까지 묻고 있어서,,, 해괴하다는 생각을 있었는데,
천즉리와 천인감응의 관계를 묻고 있었군요. 고수들의 수사가 다르긴 합니다 ㅎㅎ
의도하는 답을 순순히 잘 써내려간 율곡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천즉리 라는 기계론적 결정론은 천지감응이라는 목적론이 올바르게 이루어져야, 비로소 제 소임을 다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상감을 잘 모셔야 하고 상감은 제 구실을 잘 해야 한다. 뭐 이러한 답정너 같은 글 아니겠어요?
목적론은 결론 하나만 알면 내용은 볼 필요가 없어서 편리합니다.
기승전 예수
기승전 공
기승전 도, 내지는 각
기승전 알라
저도 목적론 하나쯤은 있습니다.
기승전 인간 ㅎㅎㅎ